경주는 신라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도시입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조용히 숨 쉬는 고분과 전각, 오래된 돌담이 자연스럽게 스쳐갑니다. 그런데 요즘 경주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아요. 감성 가득한 한옥 카페,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 그리고 트렌디한 편집숍들이 전통과 현재의 경계를 흐리게 하죠. 그 매력에 이끌려 저도 짧지만 진한 1박 2일의 경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게요.
아침 : 불국사 숲길 산책과 석굴암 시간 여행
첫날 아침 불국사 입구 소나무 숲길을 걷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새 소리와 청량한 공기가 어우러져 걷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더라고요. 다보탑과 석가탑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 정갈했어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른 아침에 방문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이어 석굴암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10분쯤 달려 주차장에 도착한 뒤, 천천히 오르막길을 걸었죠. 오르내리는 숨결 사이로 들려오는 솔향과 새소리가 마음을 씻어내는 듯했어요. 석굴 안 본존불 앞에 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조용히 두 손을 모으게 되더라고요.
점심 : 손두부 정식 & 교리김밥으로 든든하게
불국사 근처에서 '두부마을'이라는 식당을 찾았어요. 따뜻하고 고소한 손두부에 정갈한 반찬이 함께 나와 속이 참 편안해졌죠. 너무 거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좋은 한 끼였어요.
근처에서 유명한 교리김밥도 맛봤는데요. 계란지단이 두툼하게 감싸는 이 김밥은 한입 베어무는 순간 왜 줄 서서 먹는지 알겠더라고요. 간단하지만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어요.
오후 : 대릉원 고분 산책
배를 든든히 채우고 대릉원으로 이동했어요. 초록빛 잔디로 덮인 고분들이 펼쳐진 풍경은 정말 이색적이었고, 마치 신라 시대 속을 걷는 느낌이었죠. 천마총 내부 관람도 했는데, 옛 무덤 구조와 유물을 실제로 보니 교과서 속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어요.
늦은 오후 : 황리단길 카페·공방 투어
대릉원에서 도보로 이어지는 황리단길. 이곳은 진짜 걷는 맛이 있어요. 한옥을 개조한 감성 카페부터 소소한 디저트 가게, 도자기 공방, 자개 소품점까지 골목마다 들여다보고 싶은 가게들이 가득했어요. 커피 한 잔 들고 천천히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저녁 : 첨성대·동궁과 안압지 야경 산책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첨성대로 향했습니다. 조명이 켜진 첨성대는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어요. 이어 동궁과 안압지를 찾았는데, 연못 위에 비친 고건축물의 조명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물가 데크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잊히지 않네요.
식사 : 경주불고기거리에서 숯불 한우 한입
저녁은 ‘황남불고기’에서 해결했어요. 숯불에 구운 불고기 향이 일단 침샘을 자극했고, 고기와 반찬 조합이 정말 좋았어요. 무엇보다 콩나물국이 시원하고 깊은 맛이라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숙소 선택 팁 : 모던 한옥 스테이의 매력
숙소는 황리단길 안쪽 모던 한옥을 선택했어요. 겉보기엔 전통 한옥인데, 내부는 따뜻한 조명과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어요. 마당 끝 작은 노천탕에 발을 담그고 별을 바라보며 조용히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밤이었어요.
2일
새벽 : 보문호 자전거 라이딩
둘째 날 새벽, 보문호를 따라 자전거를 탔어요. 수면 위에 비치는 안개와 햇살이 어우러져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는 그 시간이 얼마나 상쾌했는지 몰라요.
브런치 : 호수 전망 카페에서 여유 한 스푼
자전거를 타고 난 뒤, 보문호 근처 카페 ‘솔거’에서 브런치를 했어요. 큰 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 풍경이 너무 평화로웠고,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가 그 시간에 딱 어울렸어요.
문화 체험 : 경주타워·엑스포공원 한눈에 보기
경주엑스포공원에 들렀다가 경주타워에 올라봤습니다. 어제 다녀온 곳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아래 전시관에서 본 금관 복원 과정과 신라 관련 체험도 꽤 흥미로웠어요.
점심 : 황남냉면 & 찰보리빵으로 산뜻한 피날레
경주의 마지막 식사는 시원한 황남냉면으로 마무리ㅍ했습니다. 물 냉면은 깔끔했고 비빔 냉면은 매콤 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제대로 살려줬어요. 식사 후에는 찰보리빵을 몇 개 사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촉촉하고 고소한 그 맛이 여행의 아쉬움을 남겨줬어요.
일정 마무리 : 한옥 카페에서 여행 노트 정리
경주역 근처 한옥 카페에서 이번 여행을 간단히 적어봤어요. 커피 한 잔과 조용한 분위기에 창밖 풍경까지… 완벽한 마무리였어요.
실전 꿀팁 모음 : 교통·예산·계절별 준비
서울에서 KTX로 신경주역까지 2시간 정도 걸리고, 거기서 700번 버스를 타면 불국사까지 바로 갈 수 있어요. 숙박비는 평균 12만 원 정도, 커피 한 잔은 5천~7천원 대였고요. 봄과 가을엔 산책하기 좋고, 여름엔 물안개 낀 새벽 풍경이 멋져요. 겨울엔 눈 내린 첨성대 야경도 환상적이에요.
느린 시간 속 깨달음 – 경주가 남겨 준 것들
경주는 시간의 속도가 느리게 흐르는 도시였어요. 빠르게 지나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예쁜 장면과 고요한 마음을 동시에 담을 수 있었어요. 다음에 다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경주는 그런 도시였어요.